A양은 왜 식이장애를 가지게 되었을까? (2)
드디어 40kg대에 진입한 A양의 빡쎈(!) 일상
그렇게 A양은 다이어트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마도 대한민국 미혼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몸무게는 요동쳤다. 명절이 지나면 심하게는 5kg까지 불(부)었고, 다시 혹독한 다이어트의 고삐를 쥐면, 원상태 혹은 -2~3kg까지 뺄 수 있었다. 식단은 많이 먹어도 1400kcal를 넘지 않았고, 운동은 5-6일을 퇴근 후에 쉬지않고 2시간 씩 했다. 자주 가는 헬스장 코치와 친해져서 웨이트를 비공식적으로 수다 떨며 눈칫밥으로 배웠지만, 1시간 웨이트를 하고 1시간 유산소를 하면 집에 오면 9시가 훌쩍 넘어있었고, 너무 피곤해 두유 한 잔을 마시고 자는 것이 그게 그녀의 평일 일상이었다. 어쩌다가 약속이라도 생기면, 헬스장을 언제 가야하나 머리를 굴렸다. 어쩔 때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회사 근처 헬스장에 6시에 나가 운동을 잠깐 하고 출근했고 (그리고 낮엔 하품을 연신했다) '일이 밀렸다'고 거짓말을 치고 칼퇴 후 헬스장을 찍고 늦게 모임에 합류했다. 그리고 특히 저녁 모임이 있는 날이면 하루 종일 쫄쫄 굶거나, 최소한의 끼니만 겨우 챙겨먹었다. 예를 들면, 아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점심은 방울 토마토 10개와 저지방 두유 정도가 전부였고, 그렇기 때문에 저녁 모임에 가면 음식을 허겁지겁 먹느라 사람들과 대화의 반은 그냥 흘리기 일쑤였다. 주말 점심 약속이 있다면, 오전 내내 공복을 유지하다 점심에 미친듯이 파스타, 케이크 등을 친구들과 흡입했고, 집에 돌아온 뒤 고칼로리 음식을 먹었다는 죄의식에 저녁은 당연하다는 듯이 굶었다.
그녀는 이렇게라도 해야 '유지'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고, 자신이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을 조금이라 빼먹거나 게을러지기 시작하면, 살은 한순간에 훅 찌는 것이며, 결혼도 안 한 자신이 몸매라도 뚱뚱하면 그건 그녀에게 '세상의 끝'이었다. 혹시라도 너무 피곤해서 운동을 하루 빼먹거나 목표로 한 열량을 초과해서 먹은 날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학대했고 다음 날엔 무조건 초절식으로 돌아갔다. 누군가 '와 A양은 운동 열심히 하네요.'라고 칭찬을 할 때면, 직장도 잘 다니고, 건강 관리에 엄청 신경쓰고 모임도 놓치지 않는 자신이 그저 너무 뿌듯했다.
"어쩌다가 약속이라도 생기면, 헬스장을 언제 가야하나 머리를 굴렸다. 어쩔 때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회사 근처 헬스장에 6시에 나가 운동을 잠깐 하고 출근했고 (그리고 낮엔 하품을 연신했다) '일이 밀렸다'고 거짓말을 치고 칼퇴 후 헬스장을 찍고 늦게 모임에 합류했다. 그리고 특히 저녁 모임이 있는 날이면 하루 종일 쫄쫄 굶거나, 최소한의 끼니만 겨우 챙겨먹었다."
그렇게 다이어트는 일상이 되었고, 여름 휴가를 앞두고 그녀는 비키니 몸매를 준비하고자 '1,000kcal' 초절식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운동은 2시간 씩 6일은 필수, 어쩔 때는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았고, 이렇게 '혹사'해야만 살이 빠지는 것이라도 굳게 믿었다. 그렇게 1달 반.... 마침내 그녀는 원하는 몸무게 163cm에 49kg를 달성했다! '내가 40kg대라니...!' 너무 배고파서 잠을 잘 수 없던 날들이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건강 미인'이라고 그녀에게 외모 칭찬을 폭풍같이 쏟아냈고, 다이어트 팁을 물었다. 그녀는 '1000kcal로 식단을 먹고 운동을 6일 2시간 씩 해줬어요,'라고 다이어트 팁을 정석인양 풀었다. 그러면 여자 동료들,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적게 먹고 운동을 빡쎄게 해야하나 봐.'라고 수긍했다. 물론 거울을 볼 때 몸메가 100%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뭉툭한 뒷구리살이나 남들보다 유전적으로 두꺼운 허벅지와 종아리 등은 콤플렉스였다. 주변에서 소위 '모태 마름'의 여자 동료나 친구들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고, 이 생각으로 그녀는 다이어트를 '계속' 이어갔다. 물론, 먹지 못하는 음식에 대한 집착, 휴식기 없는 운동, 수면 부족에 시달렸지만, 클린 식단을 하니까, 운동을 하니까 자신은 건강하다고 믿었고, 거울 속 자신의 몸매를 하루에도 4~5번씩 체크하며 '공짜는 없어. 뭔가를 얻으려면 희생해야 해...'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그리고 가끔 길거리에서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살집이 있거나, 비만인 여자들을 보면 '저러니까 살이 찌지, 저렇게 될 순 없어.'라고 생각했다.
결국 찾아온 '그 녀석'과의 대결, 승자는?
하지만 초절식, 과도한 운동 등의 일상은 계속될 수 없었다. 생리는 끊긴지 몇 달째였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짜증을 부렸다. 초가을이지만 실내에서나 실외에서는 몸이 추워서 덜덜 떨었고(지방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를 기쁘게 위로했다) 운동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평일 약속은 무조건 'No'였다. 다이어트 식단을 유지하기 위해 점심 약속도 피하기 시작했다. 상무님 소환, 외부 미팅 등의 중요한 자리가 아니라면, 계란 흰자와 브로콜리, 닭가슴살, 목심 구이 샐러드, 두유 등을 열심히 싸가지고 컴퓨터 앞에서 인스*그램의 다이어트 인플루언서 피드를 스크롤하며 먹었다. 그들의 피드와 일상을 보면 더 하면 더 했지, 자신은 그래도 '정상'이라고, 날씬하려면 이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몸이 움츠러드는 겨울이 찾아왔다. 잦은 연말 모임과 추운 날씨로 인해 움직임이 줄었고, 12월 초의 친구들과의 약속에 맛집에서 파스타와 스테이크 샐러드를 먹었고, A양은 돌아오는 길에 입가심으로 아이스크림이 너무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아이스크림이란 것을 먹어본지가 1년이 넘은 것 같았다. A양은 '그래, 딱 1개 먹고 내일 유산소 20분 더 타지, 뭐.' 라고 생각했고 제일 가벼운 칼로리의 하드를 골랐다. 2분되 되지 않아 아이스크림을 먹어치운 A양, 그길로 돌아가 편의점을 털기 시작했다. 먹고 싶었던 인스턴트 빵과 떡, 초콜릿 우유, 각종 아이스크림과 과자, 전자렌지용 닭꼬치, 컵라면과 삼각김밥 등등... 결제 금액만 4만원이 넘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이 모든 것을 1시간 안에 흡입했다. 남산처럼 솟아오른 배를 보고 그녀는 '의지박약'인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A양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다이어트 전문가(!)답게 '그래, 다이어트 하다가 잠깐 찾아온 폭식일 뿐이야. 여기서 지지말고 내일부터 다시 초절식을 하자! 특히 내일과 내일 모레는 약속도 없겠다, 집에서 홈트 2시간씩 하면서 하루종일 500kcal만 먹자.'라고 야심찬 원상복귀 계획을 세웠다. 다음 날, 그녀는 계란 흰자 5개와 작은 두유 1팩, 방울 토마토 10개, 사과 1개만 먹었다. 평소 팔로우하는 홈트 채널에서 칼로리 소모가 많다는 운동만 골라 무려 3개를 연속으로 하는 기염을 토했다. 헉헉 대며 죽을 것 같았지만, A양은 생각했다. '이렇게 죽을만큼 운동해야 살이 빠지는거야! 어제 그렇게 먹어놓고 요가 같은 정적인 운동에 안주하며 안돼. 다 태워버리겠어!'
"'그래, 다이어트 하다가 잠깐 찾아온 폭식일 뿐이야. 여기서 지지말고 내일부터 다시 초절식을 하자! 특히 내일과 내일 모레는 약속도 없겠다, 집에서 홈트 2시간씩 하면서 하루종일 500kcal만 먹자.'라고 야심찬 원상복귀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첫째 날은 성공적인 500kcal 다이어트였다. 둘째 날이 밝았고, 기운이 없는 그녀는 커피로 하루를 시작했다. 운동을 2시간 씩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스트레스가 치솟았다. 부엌으로 나가니 엄마가 산 소보로빵이 보였다. '그래... 아침이니까 운동 전에 에너지를 위해 1/4쪽만 먹자.' 부스럭대며 그녀는 조심스럽게 소보로빵 봉지를 뜯었다. 그리고 3분 뒤, 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커피랑 먹으니 꿀맛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맙소사, 다 먹으면 어떡해!!!!' A양은 울고 싶었다. 그녀는 부엌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원두커피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10분 뒤 음식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머리속엔 어제 유튜브에서 본 마약 김밥 생각이 절실했다. 결국 부엌에 다시 출현(!)한 A양, 그렇게 폭식은 다시 시작되었다. 냉장고에 있는 엄마가 해주신 김치찌개와 밥 3그릇, 평소에 먹고 싶었지만 참았단 짜파게티 2개, 유튜브 먹방에서 침 고이며 봤던 롤케이크도 배달로 야무지게 시켜먹었다. 그리고 부족했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에 홀린 듯 양념치킨과 피자를 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두려웠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위가 얼만큼 더 먹을 수 있는 것일지 두려웠다. 그동안 초절식 다이어트로 다져진 위라고, 조금만 먹어도 배부른 것이 습관이 되어서 이젠 건강하다고 자부했던 A양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한 듯이, A양의 위는 진공청소기처럼 모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고 심지어 더 달라고 아우성댔다. 맵고 짠 음식으로 배가 부르면, 달콤한 디저트류를 밀어넣으라고 위는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A양은 폭식이라는 지긋지긋한 녀석과 만났고, 힘겨운 투쟁이 시작됐다. 하지만, 폭식이는 너무 강했다. 매번 싸움에서 백전백패, A양의 K.O.였다.
폭식이가 달려들수록 A양은 운동으로 보상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래, 많이 먹었으니까 많이 운동하자!' 심지어 가장 빡쎄다는 크로스핏도 새로 끊었다. 10만 원 이상의 회원비가 헬스장 외에 또 들었지만, 이 정도는 '건강을 위해서' (날씬한 외모를 위해서) 아깝지 않았다. 어떤 날은 아침 공복 유산소 1시간을 하고 저녁엔 1시간 크로스핏을 하고 집에 오면 팔과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칠대로 지치고, 스트레스 수치가 만땅인 그녀의 몸과 뇌는 집앞 편의점을 지날 때마다 신호를 보냈다 '폭식이를 맞아주세요'라고. 어떤 날은 대견하게 이겨냈지만, 대부분의 날은 폭식이에게 만신창이로 패배를 당한 뒤, 더부룩한 위를 안고 팅팅 부은 얼굴로 퇴근을 위해 일어나는 아침이 잦았다.
(3편에 이어서)
'식이장애 극복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A 양의 섭식장애 극복기 1 (2) | 2022.12.24 |
---|